Ⅰ. 사건 개요

‘사법농단’ 사건은 2010년대 중반 대법원 수뇌부가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특정 재판의 방향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에서 비롯된 헌정사상 유례없는 사법부 내부 비위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다수의 사법부 고위 인사가 기소되었다.
2026년 1월 30일, 서울고등법원 형사 14-1부는 직권남용 등 혐의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을 뒤집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이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원장이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례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가진다.
Ⅱ. 항소심 판결 결과
항소심 재판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총 47개 공소사실 가운데 2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였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 전 대법관 역시 동일한 형을 선고받았으며, 고영한 전 대법관은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가 유지되었다.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 산하 사법부 수뇌부가 일부 개별 재판에 개입하여 직무권한을 남용하였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이 이러한 행위에 공모했다고 판단하였다. 다만 나머지 다수 혐의에 대해서는 직권남용 자체가 인정되지 않거나, 설령 하급자의 직권남용이 인정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 관계가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Ⅲ. 유죄로 인정된 주요 범죄 사실
1. 위헌법률심판 제청 취소 개입 사건
첫 번째 유죄 사안은 2015년 4월 서울남부지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과 관련된 개입 행위이다. 당시 서울남부지법 민사재판부는 사학연금법에 대해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였다.
한정위헌이란 법률 자체의 효력은 유지하되, 특정한 해석에 한하여 위헌임을 선언하는 변형결정이다. 그러나 당시 대법원 수뇌부는 한정위헌이 법 해석 권한을 침해하며 사법권 독립을 훼손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은 해당 재판부에 전화하여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직권으로 취소하고, 단순 위헌 취지로 다시 제청할 것을 요구하였다. 나아가 기존 결정문과 직권취소 결정문이 전산 검색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요청한 사실도 확인되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러한 행위가 재판에 실질적으로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한 것으로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이 전 상임위원으로부터 사전에 보고를 받은 양 전 대법원장과 박 전 대법관의 공모 관계도 인정하였다.
2.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소송 개입 사건
두 번째 유죄 사안은 2015년 통합진보당 소속 전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지위확인소송 항소심에 대한 개입이다. 해당 사건의 1심 재판부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해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는 이유로 소송을 각하하였다.
이는 의원직 상실 결정 권한이 법원에 있다는 당시 대법원 수뇌부의 인식과 배치되는 판단이었다. 이에 이민걸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은 항소심 재판부 재판장에게 1심과 다른 판단을 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건을 전달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재판부는 문건 전달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하며, 이로 인해 항소심 재판장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가 방해되었다고 판단했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이 해당 사실을 보고 받고 묵시적으로 승인한 점, 박 전 대법관이 문건 전달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던 점을 들어 공모 관계를 인정하였다.
Ⅳ. 1심과 2심 판단의 차이
1심 재판부는 문제 된 행위들이 부적절하다고 보면서도,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양 전 대법원장과 하급자들 사이의 지시·공모 관계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아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항소심은 재판 개입의 ‘형식’보다는 ‘실질’을 중시하여, 전화·문건·보고 등 간접적 방식의 영향력 행사 역시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로써 직권남용죄 성립 범위를 보다 엄격하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법리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Ⅴ. 양형 이유와 판결의 의미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재판의 독립이 훼손되고 공정한 재판에 대한 국민의 의심과 불신이 초래됐다”고 지적하며, 사법부 수뇌부로서의 지위와 책임을 강조했다. 특히 피고인들이 의지만 있었다면 범행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죄책이 가볍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만 개인적 이익을 추구한 범행은 아니며, 장기간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상당한 사회적 불이익을 감내했고, 수십 건의 공소사실 중 유죄로 인정된 부분이 극히 일부라는 점을 고려해 실형이 아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번 판결은 사법농단 사태의 전모를 모두 단죄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사법부 최고 수뇌부의 재판 개입이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명확히 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Ⅵ. 결론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항소심 유죄 판결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재판부는 사법행정의 범위를 넘어 개별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향후 대법원 상고심 판단은 직권남용죄의 범위와 사법부 내부 권한 구조에 대한 법적 기준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